- 한솔아, 너는 이번 여름에 어디갈거야?
- 어디 가긴, 학교가야지.
아아, 그래. 그렇겠네. 라며 짧게 대답한 승관은 고개를 돌렸다. 제게서 멀어진 시선에 한솔은 멍하니 승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톡 튀어나온 광대가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물들었다. 저와 눈을 마주보다 시선을 피하는, 아니 애초에 저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는 듯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리는 승관에 어느새 익숙해진 것인지. 한솔은 그저 그런 승관의 옆 모습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너는, 학교 안오려고?
담임이 가만두지 않을텐데. 중얼이는 제 목소리를 듣기는 들은 것인지 승관은 제 말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저 평소와 같이 초점 없는 눈으로 저 멀리에서 푸르게 흩어진 구름을 시야에 담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을 뿐.
승관은 늘 알 수 없었고, 단조로웠다. 갑자기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툭 내뱉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는 일이 다반수였다. 그럴 때마다 한솔은 지금 승관의 앞에 존재하는 제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에 몸서리쳤다. 아무리 오랫동안 겪여왔어도, 이젠 익숙해졌다 아무리 되뇌여도 절대 적응할 수 있는 감각이 아니었다. 너에게 누구도 되지 못한다는 것은. 물론, 내가 아니더라도 네 앞에서는 무엇이라도 아무것도 되지 못했겠지만. 너는 이미 나에게 네가 되어버렸으니까.
- 한솔아.
어느새 승관은 초점 없던 눈을 거두고는 한솔을 바라보고 있었다. 깊다. 승관과 눈을 맞출때마다 한솔은 늘 그렇게 생각했다. 참 깊었다. 네 눈동자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깊은 심야에 발목을 잡혀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들어와서는 안될 곳으로 막을 수도 없이 새어들어와 제 숨을 턱 막히게 만드는 바닷물처럼, 너는 막을 수도 없이 제 안으로 스며들었고, 내 숨통을 조여왔다. 그러나 그보다 비참한 것은 너에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네게 매달려 네 행동 하나, 네 눈빛 한 번에 이렇게 휘둘리는데. 너는, 너에게 나는, 나는 너에게.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까.
무더운 날씨, 승관의 위로 내려앉은 햇빛이 따갑지도 않은지 승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었다. 승관의 손목을 타고 녹아 흐르는 단물이 승관의 하얀 피부색으로 물들어 뚝, 뚝하고 떨어져내렸다. 네가 걷는 걸음마다 그림자처럼 희뿌연 아지랑이를 피워내던 검은색 아스팔트가 더욱 짙게 물들어 따라붙었다. 네 입 안에서 녹는 아이스크림보다 흘러내리는 것이 더 많아서. 그러니까 그냥, 아까워서. 네 손목을 느리게 잡아당겨 어느새 네 팔뚝을 따라 흘러가는 단물을 핥아올렸다. 승관은 놀란 듯 눈을 두어번 깜빡이더니 너는 이내 아이처럼 맑게 웃어보였다. 제 손에 들려있는 아이스크림을 내 입 쪽으로 들이밀면서.
- 먹을래?
- 줄 생각도 없잖아.
어떻게 알았어? 라며 승관은 맑게 웃어보였다. 쓸데없이 먹을 거에 대한 욕심만 많아선, 승관은 꼭 줄 생각도 없으면서 정말 곧 줄 사람처럼 굴었다. 재미없어. 하지마. 몇 번이고 말해보아도 승관은 여전히 입꼬리에 웃음을 대롱대롱 매단 채 어깨를 한 번 으쓱일 뿐이었다.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허탈한 줄 알아? 턱 끝까지 차올랐던 말을 네게 내뱉으려다 제 숨과 섞어 한숨으로 뱉어내고는 고개를 털어냈다. 이렇게 물으면 너는 분명히. 눈을 크게 뜨고는 내가 잘못한거야? 라고 되물을 것을 알기 때문에.
승관의 모든 행동에 악의가 없음은, 그 누구보다 한솔이 더욱 더 잘 알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싶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까. 네가 뱉어내는 물음들은 어떤 비아냥도, 장난도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 네 무의미한 말 한마디에 담금질 당하는 사람이 잘못이지. 승관의 깊은 눈동자만큼이나 승관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몇 년의 짝사랑 끝에 내가 너에게 나의 마음을 고했을 때, 나는 네가 놀라지 않았다는 것에 놀랐고. 그 뒤에 이어진 너의 말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때, 너는 분명히 또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었다. 네가 나에게 늘 보여주는 어린아이같이 맑은 웃음을 보이며.
- 나를 좋아하지 말아줘.
나는,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 그럼 내가 너를 좋아해볼게.
그 날 네 웃음은, 너의 말처럼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한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만큼 내가 후회하는 날은 없을 거라고.
너와 나의 관계는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다. 그저,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고. 전보다 조금 더 위태로워졌을 뿐. 승관은 그 날부터 꼭 한솔과 같이 등교했다. 승관의 아주 가끔, 한 달에 한 두번 제 멋대로 말 없이 사라지던 버릇은 한솔과 교제를 시작하며 문자 한 통을 남기는 것으로 교정되었다. 다른 다정하거나 특별한 말은 아니고.
[오늘은 먼저 가.]
뭐, 이정도.
승관은 어린 소년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제 손끝부터 타고 흐르는 단물로 인해 손가락 사이가 끈적하게 달라붙어도, 한솔이 저의 붉은 입술을, 희뿌연 액체가 제 살결을 타고 흐르는 것을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아도, 그저 제 앞의 설탕이면 모두 잊고 맑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네 성격의 단점이라면, 저의 끈적한 시선 뿐 아니라 다른 이의 시선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 화장이라도 한 듯 불그스름한 입술. 아무렇지 않게 제 교복상의를 벗고는 창가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 행동들이. 여자가 한 명이라도 섞여있는 공학이었다면, 그냥 특이한 아이로 인식되었겠지만 남자새끼들로 가득 찬 남고에서는 모두의 욕망이 집합된 집합체가 되었다. 좆같게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네가 상의를 벗을 때마다 네 어깨에 둘러주는 저의 체육복을 걷어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록 눈을 두어번 깜빡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는 하였지만, 잔뜩 찌푸려진 제 미간에 너는 겁먹은 듯 나를 보곤 무어라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고개를 돌려 구름이 섞인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네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것은. 두려움, 그리고 다른 것은 어느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열심히 남아있는 아이스크림을 입 안에 머금었다. 공허한 시선. 더 이상 네 걸음들이 물들만큼 무덥지는 않은 모양이었지만. 너와 같이 있으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느릿하게 떼어지는 발걸음, 네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보이는 네 속눈썹이 마치 카메라로 확대 한 것만 같이 선명해서, 매사에 여유로운. 아니, 무관심한 너의 태도가 네 주변의 시간을 잡아먹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네 곁에 있는 것을 좋아했으며 동시에 그 감정을 부정했다. 부정한다고 부정할 수 있는 거였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 한솔아.
언제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것인지 입가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혀를 내어 한 번 핥아내고는 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살짝 열렸다 닫히는 붉은 입술. 네 혀가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다 입술이 닫히자 너와 시선을 마주했다. 느릿하게 휘어지는 너의 눈꼬리가, 네게 닿을 때마다 차갑게 식어가는 제 몸이.
- 내일은 나 기다리지 않아도 돼.
완전히
- 아마, 모레도.
가라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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