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3일 후,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기계음을 내며 쏟아지는 서늘한 바람도, 동네 교회 목사님의 주기도문처럼 나른한 방학 선언식도, 네가 없으니 목 뒷 줄기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지루했다. 그냥 에어컨의 바람이 너무 강했던 것 같다. 나는 네 말이 명령이라도 되는 듯 네가 말한 날로부터 내일, 그리고 모레를 홀로 등교했다. 주인의 말을 듣는 잘 훈련된 개새끼처럼.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아니, 몇 주가 지났다. 너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가도 사라진 적이 없는 것처럼 곧 돌아와 나를 기다렸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었다. 늘 그랬듯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뜨거운 태양빛 아래, 벽에 기대어서는 더운 듯 표정을 한껏 찌푸리고 내게 당당히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며 내게 손을 내밀 거니까. 나는 멍청하게 너를 기다렸다. 네가 약속했던 날짜가 지나고, 몇 주가 더 지나 방학의 끝이 다가오도록 너는커녕, 너의 그림자조차 만나지 못했을 때도 나는 너를 믿고있었다.
네가 없어지고부터 시작된 덥다 못해 뜨거운 여름은 지독하게, 없어지지도 않고 한솔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얇은 하얀색 교복이 투명해질 정도로 뚝뚝 팔뚝을 따라 흐르는 땀은 말라버리지도 않고 끝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옆에서 헥헥거리며 땀과 함께 끈적한 단물을 흘려대는 승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야, 최한솔
- 왜.
- 담임이 너 불러.
천장에서부터 쏟아지는 차가운 바람이 마치 생명의 숨결이라도 되는 듯 교실 문을 열자마자 양 팔을 활짝 벌리고 바람을 맞던 석민은 주위를 둘러보다 나를 보자마자 꽤나 다급한 손짓을 보였다. 무슨 일인데? 몰라. 그냥 빡돈 거 같던데. 너 뭐 했냐? 몰라 시발. 땀이 다 식기도 전에 열기로 가득한 복도로 내몰린 한솔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한솔아, 승관이 어디있는지 아니?
- ...네? 승관이요?
한솔은 꽤나 다정한 담임 선생님의 말투와 표정에 놀란 듯 눈을 껌뻑이다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뭐. 담임 빡돌았다며. 역시 석민의 말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생각을 하며 저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을 가만히 마주쳤다.
어른들은 다 저런 눈을 가지고 있었다. 깊은 듯 얕은 눈동자. 너무 깊어 하염없이 빠져들다가도 자각하고 나면 발목, 아니 발등도 채우지 못하고 철퍽거리는 것이 어른들이었다. 어지럽고. 복잡하다. 부승관처럼.
죄책감, 불안감. 가슴속을 휘젓다 못해 튀어나온 다른 이의 감정. 부승관이 무슨 사고라도 쳤나. 그렇지만 사고를 쳤다기에는 선생님의 눈동자 속에서 유영하는 감정들이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담임 성격에 분명, 사고를 쳤으면 여기 있는 책상 하나라도 엎었겠지. 그것도 아닌데 담임 표정이 왜 저래. 담임 선생님은 한솔이 뭐라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 듯 꽤 간절한 표정으로 한솔과 눈을 마주쳤다. 그런 눈길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쌤이 그런 눈빛으로 봐도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 무슨 일 있대요?
- ...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나의 태도에 선생님은 고개와 손을 두어번 젓고는 내 손에 작은 딸기맛 쿠키 하나를 쥐어주었다. 뭐야 진짜, 이 쌤이 오늘 왜 이래. 뭐 잘못 드셨냐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필터 없이 그대로 뱉어냈다가는 쿠키를 빼앗기는 걸로 모자라 아침자습시간 내내 벌을 서게 될 것 같아 아랫입술을 꼭 이로 다물었다.
네가 없는 시간은 참 빠르게도 지나갔다. 네가 유일하게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던 문학도, –그렇다고 성적이 잘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네가 끔찍이 싫어했던 수학도, 네 모자란 수면을 도와주었던 영어도. 네가 없으니 빠르게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너와 내 사이를 떠내려간 시간이 너와 나 사이에 깊은 골짜기 하나를 만들어 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이 너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내가 알고 있는 것. 다른 것이 없었다.
나는 네가 어디있는지 모른다.
나는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너와 나는,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조금만 더울 때마다 찾던,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은 잘 챙겨먹었는지, 여름을 못견디게 싫어하던 네가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어디선가 녹아버리지는 않았을지. 까만 아스팔트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뭉게뭉게 떠오르는 잡념에 머리를 잠식당한다. 곧 이어 그 사이를 가르며 피어올라 머릿속을 물들이는 가는 실.
보고싶다.
네게 말을 하지 않고 너의 집에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네 집 안에 들어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네가 가끔, 늦잠을 잘 때에 나는 이 자리에 서서 굳게 닫힌 철문을 몇 번이고 두드렸었다. 부승관, 학교 가자. 일어나. 철문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적막, 때가 타 옅은 회색이 된 운동화로 문을 두어번 차고나면 너는 눈도 뜨지 못한 채 창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미안. 이라며 아직까지 깊은 잠에 잠긴 목소리를 내뱉고.
철문은 평소와 같이 굳게 닫혀있었다. 혹시 창문이 열려있을까 싶어 바라본 창은 굳게 닫혀있을 뿐 아니라 커튼이 내려와 시야를 차단하고 있었다. 더위도 많이 타는 애가. 창문 좀 열어놓고 자지. 괜한 아쉬움에 머리를 두어번 긁적이고는 몸 속에 가득찬 열기를 숨과 함께 뱉어냈다.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담배연기 같은 희뿌연 숨. 손은 곱게 말려 두려움을 모른 채 철문을 두드리고 목소리는 더 이상 차오를 곳이 없어 토해내듯 뱉어진다.
- 부승관.
- 나 왔어.
아파트 복도를 메아리처럼 울리는 자신의 목소리는 원래 없었던 것 마냥 사라진다. 고요히 내려앉은 적막.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정적에 팔뚝의 털이 삐죽 선다. 제 팔뚝을 한 번 쓸어내린 한솔이 무언가의 신호라도 되는 양 발로 문을 두어번 찼다. 이제 너의 차례였다.
- ...
따가운 여름 날의 햇살처럼 적막이 내려앉는다.
- 승관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끄러운 매미울음 소리.
- ...
위험신호를 알리는 사이렌 마냥 점점 커지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제게 경고를 울리는 것만 같다.
- 기다릴게.
다른 이의 고막을 울리지 않고 공기 중에 흩어져버리는 제 음성이 가엾기만 하다.
결국, 한솔은 올라왔던 발걸음을 그대로 돌려 내려왔다. 자꾸만 귀 끝에 승관이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남아있는 듯 했지만 매미가 그것을 감추려는 듯 시끄럽게 울어제껴 한솔은 더운 숨을 내쉰 채 그로부터 등을 돌려야 했다. 그래, 그래도 괜찮아. 나는 너를 기다릴테니까. 마지막으로 네 집 앞에서 뱉어냈던 말을 여러번 입 안에서 곱씹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길게 늘어진 한솔의 그림자는 짙은 발자국을 남기고 그에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늘어지게 따라붙었다. 문을 열어주지 않았으니, 너는 집에 있지 않았겠지.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관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라는 예감이. 아니, 확신이 들었다. 한솔의 근거없는 자신감이었다.
잘게 부서진 딸기맛 쿠키 하나만이 승관의 집 앞에 놓여 매미의 울음소리를 온전히 듣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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