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연기하려고 배우 됐습니다.
- 한솔아.
- 좆질하려고 배우 된 거 아니라고요.
- 최한솔.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조연으로라도 출연하던 영화에서는 단 며칠만에 그대로 사망씬을 찍게 됐고, 제 커리어를 길러주겠다던 회사는 제 커리어에 검은 물감을 덧칠하라 권하고 있었다. 연기하게 해줄게. 그러니까 한 번만, 딱 한 번만 눈 감고 다녀오면 된다니까? 한솔아, 형 입에 풀칠 좀 하게 해줘라. 작은 회사, 가족과 다름없이 지낸 회사 식구들이었다. 대표님은 제 앞에 무릎이라도 꿇을 것처럼 제 손을 잡고는 저에게 타이르듯 빌고 있었고, 승철이 형은 난처한 표정으로 저와 대표님만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저절로 한숨이 밀려나와 후더운 공기에 섞여든다. 한 여름임에도 에어컨을 틀지 못해 물기가 가득한 방 안.

그래도 대표님, 못하는 건 못하는 거예요. 잡혔던 손을 한 번에 뿌리쳤다. 제 손톱모양대로 붉게 달아오른 손바닥이 울퉁불퉁하게 부어오른다. 회사에 희망은 저 밖에 없다며, 톱배우로 만들어줄테니 나중에 한우나 쏘라던 회사 식구들의 얼굴이 눈 앞에 어른거려 눈을 질끈 감고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며 뒤를 돌았다. 괜한 죄책감에 형, 미안해요. 라는 생각을 한 번하고 눈을 뜬 순간.

- 한솔 씨.

아, 씨발.
좆같은 부승관.

*

한솔은 벌레라도 씹은 표정으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입술에 대고 있었다. 승철이 그런 한솔을 본다면 기겁을 하고 제 손에서 컵을 떼어놀 것이 분명 했지만 한솔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영화도 짤렸는데 뭘. 지금은 혀가 데여서 발음이 꼬이니, 입술이 부르터서 안예쁘니. 그런 것보다는 자신의 앞에서 입가에 크림을 잔뜩 묻히고는 생크림이 듬뿍 묻혀진 케이크를 떠먹고 있는 부승관을 더 신경써야 했다. 자기랑 자기 싫다고 회사에서 그 지랄을 떨고 온 사람을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여기까지 데려온 건지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한참동안 숨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왜인지 나만 그렇게 느낀 것 같았지만. 승관이 입술에 묻은 몽글몽글한 생크림을 혀로 다 훑어 먹고 남겨두었던 딸기까지 입 안에 밀어넣자 한솔은 어느새 비어버린 머그잔을 내려놓고 승관을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 저기요, 부승관씨.
- 네, 한솔씨.
- 저는 그 쪽 스폰 받을 생각 없거든요.

부승관의 붉은 입술 사이로 아, 하고 짧은 탄식이 터져나왔다. 느릿하고 붉은 숨. 내가 가장 싫어하던 숨이 공중으로 흩어져나와 호흡기를 통해 제 안으로 섞여 들어온다. 곧 이어 부승관은 눈꼬리를 곱게 휘어접으며 웃었다. 그리고는 이어져 나온 말에 한솔은 예의 그 매서운 표정을 그만두고 얼빠진 표정으로 승관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저도 한솔 씨 스폰 대줄 생각 없는데요?

저건 또 무슨 개소리야. 좆질 몇 번 하면 스폰을 대주겠다고 회사로 컨텍을 넣을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발뺌을 하는 꼴이 웃겨 얼빠진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웃긴지 부승관은 나른한 웃음을 터트렸다. 예전에 호텔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쳤던 그 웃음. 다른 남자에게 향하던 시선이 제게로 향하니 그 때 구미호에게 간을 뻇긴 사내처럼 멍청하게 웃던 남자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응, 씨발 인정하기 싫은데. 웃는 꼴이 존나 예쁘긴 하다.

- 저, 스폰 대준 적 한 번도 없어요.
- 예?
- 몰랐구나, 한솔 씨.

예, 전혀 몰랐네요. 그럼 제가 호텔에서 마주친 그 수많은 남성들은 모두 사촌에 팔촌이라도 되십니까? 턱끝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삼켜내고는 작위적은 웃음을 지어냈다. 비지니스, 비지니스하자 한솔아. 저를 타이르듯 몇 번을 되뇌이고는 입꼬리를 간신히 올렸다. 저쪽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몰라도- 아이같은 웃음을 흘리면서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계속 노려보고 있기에는 좀, 그래서.

- 나랑, 연애해요.

이건 또 무슨 신박한 헛소린가 싶어서 눈을 마주보니 함정을 설치해놓고 누군가 걸리기를 기다리며 방긋방긋 웃고있는 소년같은 웃음이 부승관의 입꼬리에 걸린다. 아, 아무래도 함정인 거 같은데.

- 나 원래 아무나랑 섹스 안하거든.

그 이후로는 몽롱한 꿈처럼 모든게 진행됐다.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제게 다가오라는 듯 까딱였고, 저는 무언가에 홀린 듯 다가갔다. 귓가에서는 부승관의 나른한 목소리가 울려퍼졌고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부승관이 내민 손을 잡고 두어번 흔들었던 것도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형, 아니 대표님과 승철이 형의 어깨에 내 팔이 올라갔고, 그 둘의 함박웃음 사이에서 붕붕 휘둘려다녔던 거 같다. 아니, 친동생같은 배우가 스폰 뛰러 간다는게 그렇게 좋아? 제 톡 쏘아붙이는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하하호호 웃는 회사 식구들의 웃음에 두손 두 발이 다 들렸다. 좋은가보네. 그것도 존나. 

그 틈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한껏 쓰다듬 당하느라 엉망이 된 머리를 정리하는데 또 어디서 사온건지 초콜릿 라떼를 한 손에 들고는 사무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부승관과 눈이 마주친다. 부승관은 곧 이어 나를 향해 눈부신 햇살같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붉은 입술을 몇 번 오물거렸다. 오늘, 끝나고 봐요. 소리 없이 전해진 음성, 자신의 입술만큼 붉은 머리칼이 열린 문사이로 흐른 바람에 의해 휘날리고 부승관이 자취를 감추자 문이 닫힌다. 멍하니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자 코끝에 맺히는 향수냄새.

아, 아무래도 제대로 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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